[성인 adhd] 복약일지

[성인 adhd] 성적편차의 역사 (1) : 초중고 성적

Anping 2022. 5. 19.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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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안핑뚱이입니다.
2020년 4월 성인adhd진단을 받은 이후 만 2년이 넘었습니다.
현재 거주지 근방 전문병원의 부재와 직장일로 바빳어서, 이전 콘서타 복용량이었던 54mg(36+18)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경쓰지 못했던 상태 기록, 약과 용량변경 등을 다시 기록해보려고 '생각'만 하는 중 입니다 ^^

본가에서 재미있는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어릴 때 부터 눈에 띄는 ADHD증상은 없었지만,
초중고등학교 통지표와 성적표에 서서히 그 경향이 보이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초등학교

1반 25~35명의 학생이 있었다 보니, 선생님들께서 행동사항 및 특성을 기본문장으로 대부분 작성하셨습니다.

[초등 2학년]

2학년 담임선생님께서 저를 굉장히 이뻐하셨던 만큼,
관심있게 지켜보고 통지표에 솔직하게 적어주셨네요.

▪️덤벙거림
▪️문장제의 이해력 부족
▪️국어 이해력 부족

▪️학습활동시에도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며 수학의 계산이 빠르고 바른태도로 학습을 하나
▪️너그러움이 조금 부족함


꽤 어릴 때 부터 adhd의 모습 혹은 지금의 제 모습이 드러났었던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꽤 극단적인 성적입니다.
몸 쓰는건 좋아했지만, 글로 표현된 체육이 어려워 40점인가 50점을 받고 엄청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중학교

중학교 시험은 과목별 100점이 흔해서 과목 등수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전 과목에서 몇 개를 틀렸나' 올백 같은 점수가 더 중요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2학년]

과목별 경향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한 건 국어를 지독히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라 하면
예체능 과목 중 1과목을 굉장히 어려워했고 포기하려는 순간,
천사 똑똑이 친구가 저를 본인 집으로 불러 그 과목 A-Z까지 수업하며 정리해주고
외울 때까지 집 못가게 과외를 해줬었습니다.
(여담: 그 친구는 지금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분명 좋은 선생님이 되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고등학교

중학생이었던 저는 느낌상 제 주제를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이 지원한 학교를 피하고, 경쟁이 적을 것 같은 공립 고등학교에 지원해 입학했습니다.

지금 이 선택을 평가하자면 아주 great 했던 것 같습니다.
적당한 성과를 확인하며 제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느정도 적응할 만한 분위기에서 생활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1. 성적
배치고사 반 4등으로 입학해 담임선생님께 기대를 받았었습니다.
매 시험이 중요한 고등학생 첫 학기에 과목별 극단적 편차 등급을 받았습니다.
저, 부모님, 선생님 모두가 당혹스러워 했지만 첫학기니까~ 는 2학기에 더 심해짐...
(담임선생님이 국어였는데 제 국어성적과 수학성적을 보시며 서운하다고 함. 잘 되라고 다그치기도 했음)

인생 중요 결정이었던 '이과 선택'을 했습니다.
당시 저희 학년의 이과 지원자 수도 적었는데, 그나마 1/3도 상위 30% 학생들이 포진했어서
그나마 좋아하는 과목으로 피터지는 경쟁을 할 곳(이과) VS 싫어하는 과목이지만 경쟁은 비교적 적다고 추측되는 곳(문과)
선택의 기로에서 받은 학기말 성적을 통해
문과학생들과 국어와 법과정치 같은 과목을 함께 하는 것은 대학을 포기하는 것이구나 싶어
이과에 가기로 결정합니다.

당시엔 그 충격때문에 이과를 선택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제가 adhd를 가진 것은 몰랐었지만
'단점을 평범한 사람만큼 되도록 고치는 것보다, 장점을 나의 강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더 유리하다'
adhd인 저의 성향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던 사례였기에 의의가 있었습니다.


2. 행동적 특성
늘 일찍 등교했습니다.
아침 자습시간 전까지 편히 자야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습시간에도 계속 꾸벅꾸벅 졸았고, 하루는 담임 선생님이 저를 불러 '왜 아침에 계속 자니...'라며 혼을 냈습니다.
다음날 스탠드 책상에서도 조는 모습을 보고 더이상 혼이 나지 않았습니다.

3년 내내 아침자습시간에 멀쩡한 정신이었던 적은 3손가락 안에 들었습니다.
일찍 자기도 힘들었고, 일찍 자더라도 아침엔 늘 졸렸습니다.
체력의 문제라고 하기에는 몸이 너무 건강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문이과 구분없이 전과목을 전교생이 함께 시험을 봤습니다.
국어 책을 통채로 외울 정도로 노력했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는지 4등급이 한계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1. 성적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국어 영어를 문이과 공통으로 성적산출을 했기에 성적은 변함 없었습니다.

국어 5등급을 피하려다 영어 4등급을 얻었습니다.
이때의 국어-영어-중국어의 화려한 라인업은
언어는 나와 맞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줍니다.
(문법 암기 어려움, 불규칙한 예외, 의미 해석 어려움 등)

지금 생각해보면 과목 자체 특성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잘 못하니 흥미도 떨어져 공부 방법을 열심히 찾거나 끈질기게 노력을 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1학년 때 수학 상위권 학생 대부분이 이과를 올라온 것을 감안하면
놀랍게도 수학 과학 성적은 유지~약간 상승됩니다.
(이과 기준 - 1등급: 1-3등 / 2등급: 4-9등 / 3등급: 10-15등)

제가 생각하는 수학 과학의 특징은

- 기본 풀이 방식 암기 시, 적용만 하면 풀 수 있음

- 틀린 문제의 이유가 명확하고 납득하기 쉬움
(문제와 보기의 해석이 비교적 출제자의 의도와 동일하기 해석하기 쉽다)
(반면 국어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뉘앙스 파악하기. 이렇게 해석하면 1번이고, 저렇게 해석하면 2번이라 항상 보기 2개가 헷갈렸음)

- 문과 과목과 달리 예외가 명확히 정의되어있어 산출하기 쉽다.
(영어에서 h발음이 묵음일 경우와 아닌 경우를 구분하는 것보다, 과학에서 물과 같은 일부 물질의 온도에 따른 밀도가 다른 경우를 파악하는 것이 더 쉬움)


이 부분은 콘서타를 복용하고 있는 중에도 크게 개선이 되지 않는 부분임을 보니
adhd의 영향인 것이기도 하지만, 지능IQ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것도 크다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지능IQ는 유전이고, 뛰어넘지 못하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생각)





[고등학교 3학년]


1. 내신과 수능
처절한 3월 모의고사 점수, 담임 선생님과의 내신산출 결과.

수학 과학은 과목별로 시험을 치고, 내신 성적이 나옵니다. (물/화/생/지-수1/수2/기벡/확통)
학기별로 잘 나온 1과목만 선택할 수 있는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내신산출에는 등급도 중요하지만 '과목의 단위수'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

[평균 내신등급 = (과목 등급 x 과목 단위수) 대학학과별 반영되는 과목 전체 합 / 총 단위수 합]
특히 반영비율이 높은 2, 3학년 때 과목이 찢어졌었네요.

반면 국어 영어는 1,2학년 문이과 통합 성적 산출과 6-7시간 단위수(과목 쪼개짐x)...
이과끼리 경쟁했던 3-1학기 국어 성적을 보면 4등급은 그저 운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잘 한 것보다 못한 것이 더 크게 반영되는 기분,
이 과목들이 대학가는데 발목을 잡는 구나, 저를 많이 자책했었고 지금도 아찔합니다.

이때 세상물정 잘 모르고 살던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수능의 중요성을 알게됩니다.
더 애매한 모의고사 점수로는 평소 제가 생각해왔던 대학을 쓴다면 재수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2. 기회
우연히 새로 등록한 수학학원에서 '논술'이라는 대입제도를 알게 됩니다.
주관식 수학과학 시험만 치룸, 원하는 대학의 평이한 논술 난이도.
이제부터 중요한건 '수능최저 점수', 그 중에서도 '수학 점수'가 최우선이 됩니다.
최저 못맞추면 내신 점수도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순수 이과생과 재수생이 함께하는 이과수학은 정말 힘들었네요.
1. 암기 풀이의 한계 (3등급이 최선)
2. 1문제가 1등급을 결정 (4문제 4등급 압박)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내신도 안나오는 언어점수가 수능도 비슷했습니다.
난이도에 따라 파도가 많이 쳤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과탐은 과목선택을 잘 못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잘 하는 과목이 있는데, 남들이 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게 아쉽네요.

뒤늦게 수능공부를 시작해 시간도 부족했고
정보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입시정보와 공부 방법을 다양하게 시도하지 못해던 것 같네요.



3. 진로
성적보다 더 고민되었던 것은 원서 작성이었습니다.
딱히 가고 싶은 전공도, 대학도 없었습니다.
학생의 본분이라 배운 시험만 바라봤었기 때문입니다.
- 다양한 학과가 있는 학교로 가자: 국립대

꼴에 자존심은 있으니 하한선 대학을 정하고,
학과와 최저를 상향 및 적정으로 지원했습니다.



4. 입시 결과
그 당시 '나는 한계가 명확한 사람',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잘 하는 것도 아닌',
'그래서 너무 애매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수능날 긴장+평소 안하던 짓+실력으로 역대 최저성적이 나옵니다.
각 과목별로 지난 3년 간 모의고사에서 받은 최저등급을 수능에서 한 번에 받습니다.
최저등급 미달로 수시 4개를 못맞춥니다.
그나마 맞춘 논술 중 1개는 시험을 치지 않았고, 1개는 겨우 시험 시간에 도착해 쳤습니다.

- 가망 없는 것 같은 수시
- 가기 싫었던 동네학교도 불가능할 것 같은 수능점수
- 긴 시험을 준비해야하는 재수는 죽어도 싫음


우울하고 춥던 12월, 길에서 유일하게 최저를 맞추고 논술을 치룬 대학 합격 소식을 확인했습니다.
그것도 최초합으로요.
성적 꼬리가 유난히 긴 학교였지만 운이 좋았구나라 생각했습니다.

실은 제 실력을 제일 잘 뽐낼 수 있는 전형을 무의식적으로 찾고
확률이 가장 높은 학과에 적절하게 지원했었겠지만
명확히 알고 지원했다기 보다, 감으로 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겠죠.
(작성 원서 중, 제일 성적 낮고+ 제일 최저 낮고+ 논술로 지원)

그리고 그 대학은 지금 저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총 내신 2.9등급
수능 평균 4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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